[뮤즈씬] 쥘 베른의 고전 ‘80일간의 세계일주’가 한국 창작진의 손끝에서 새로운 감성으로 재탄생한다.

뮤지컬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오는 17일부터 26일까지 부산 광안리 어댑터씨어터 2관 무대에 오른다.

이번 작품은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로 호흡을 맞췄던 연출 유병은, 작곡가 강진명의 재회작으로, 시간에 철저한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의 세계 여행과 인간적 성장을 중심 서사로 풀어낸다. 배우 강성진, 김형균, 구옥분, 김륜호, 엄준식, 김두리, 우한수, 이은미가 출연해 다채로운 앙상블을 선보인다.

1872년 발표된 원작은 150여 년간 인류 문학사에서 가장 사랑받은 모험소설이다.

이번 뮤지컬은 원작의 탄탄한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시선과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춘 ‘인간 성장 서사’로 확장했다.


특히 1897년 런던을 배경으로 한 단순한 내기 여행을 정의와 구원의 여정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극 중 포그는 ‘규칙의 신사’에서 ‘정의로운 구원자’로 변모하며 사랑을 깨닫는 인물로 재탄생한다. 넘버 ‘설레는 이 마음’은 감정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새롭게 등장한 인물 ‘라코타’는 억압받은 원주민을 구하는 포그의 인류애적 면모를 강화한다.

유병은 연출은 “냉정한 신사가 세상을 돌며 결국 사람에게 돌아오는 이야기”라며 “작은 무대에서 시작하는 도전이지만 그 안에서 더 큰 인간의 이야기를 발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근 한국 뮤지컬계는 단순한 라이선스 수입을 넘어, 해외 원작을 한국형 창작 시스템으로 재해석하는 흐름이 두드러진다.

특히 2025년 브로드웨이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 ‘Maybe Happy Ending’이 토니 어워드 6관왕을 차지하며 K-뮤지컬의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했다. ‘80일간의 세계일주’ 역시 이 흐름 위에서 K-뮤지컬 스토리텔링의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번 공연은 부산 100석 규모 소극장 초연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제작진은 “소극장은 대본과 음악 중심의 실험 공간으로, 관객 피드백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인큐베이팅형 시스템을 구현한다”고 설명했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오프 초연-피드백-확장’ 모델을 국내 창작 환경에 맞게 적용한 사례다.

‘빨래’, ‘김종욱 찾기’, ‘팬레터’ 등 다수의 창작 뮤지컬이 소극장에서 출발해 장기 흥행으로 이어진 전례처럼, 이번 ‘80일간의 세계일주’도 창작·실험·관객 호응이 맞물리는 새로운 생태계의 출발점으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