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씬] 영화배우 안성기가 별세했다. 향년 74세. 한국 영화의 성장과 굴곡을 온몸으로 통과해 온 그는, 한 개인의 연기 인생을 넘어 한 시대의 문화사로 남는다.

안성기는 1950년대 후반 아역으로 데뷔한 이후 반세기 넘게 스크린의 중심에 있었다. 흥행과 예술, 대중성과 사회성을 가르지 않고 매 작품에서 ‘연기의 기준’을 보여줬다. 영화계가 그를 ‘국민배우’로 부른 이유다.

한국 영화는 한 명의 배우를 잃었고, 한 시대의 온도를 기록하던 체온계를 내려놓았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늘 ‘사람’이 있었고, 스크린은 그 사람의 숨결로 따뜻해졌다.

안성기의 연기는 번쩍이는 기교가 아니라 오래 쓰다 손에 길든 연필 같았다. 잘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면 문장이 무너지는 도구. 그의 얼굴이 등장하는 순간, 관객은 이야기의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설명하지 않아도 믿게 되는 힘, 그 신뢰가 그의 가장 큰 재능이었다.

고 안성기 배우. 사진 옛나인필름


아역의 시간, 배우의 생애

그는 아주 이른 나이에 카메라 앞에 섰다.

아역으로 시작한 시간은 단순한 출발선이 아니라, 영화와 평생 동행하겠다는 묵시적 약속처럼 보인다. 성인이 된 뒤에도 그는 늘 ‘처음처럼’ 연기했다. 새 작품 앞에서 늘 조심했고, 캐릭터 앞에서는 늘 낮아졌다.


흥행과 예술의 경계는 그의 필모그래피 앞에서 무의미해졌다. 시대극의 무게와 코미디의 리듬, 사회적 질문과 개인의 상처를 그는 같은 호흡으로 건넜다. 스크린은 그의 나이를 셀 수 있었지만, 연기는 늘 현재형이었다.

말보다 태도로 남긴 철학

안성기는 인터뷰에서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태도가 문장이었다.

작품을 고를 때 그는 유행보다 맥락을 보았고, 역할을 연기할 때는 설득보다 공감을 택했다. “연기는 나의 전부”라는 말은 선언이 아니라 고백에 가까웠다.

라디오스타에서 그는 실패와 재기의 서사를 과장하지 않았다. 웃음 뒤의 침묵, 박수 뒤의 고요를 알았기 때문이다. 관객은 그 침묵을 통해 스스로의 시간을 떠올렸다.

영화의 밖에서도, 영화였다

영화 '사냥' 스틸컷

그는 스크린 밖에서도 배우였다. 스크린쿼터 논쟁이 한창일 때, 한국 영화의 다양성과 생태계를 위해 몸을 내밀었다.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을 말할 때는 “영화는 기억되어야 할 문화”라고 했다.

구호는 짧았고, 근거는 길었다. 현장을 아는 사람의 말은 늘 단단했다. 그는 영화의 미래를 걱정하는 방식조차 영화 같았다—소란보다 지속을, 승부보다 보존을 택했다.

상과 박수, 그리고 겸손

고 안성기 배우에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안긴 '라디오 스타' 스틸컷.시네마서비스 제공

수상은 많았지만 그는 늘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트로피보다 동료의 이름을 먼저 불렀고, 자신의 성취보다 관객의 시간을 귀하게 여겼다. 그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습관처럼 보였다.

그의 연기는 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상은 그를 설명하기에 부족했다.

남은 것들

안성기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필모그래피만이 아니다. 현장에서의 태도, 후배를 대하는 눈빛, 작품 앞에서의 긴장—그 모든 것이 한국 영화의 암묵지로 남았다.

스크린 위의 그는 여전히 말을 건다. 소리 높이지 않아도 들리는 목소리로, 급하지 않아도 늦지 않은 속도로. 영화는 그렇게 사람을 기억한다.

그는 퇴장했지만,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안성기의 얼굴이 지나간 장면마다, 한국 영화는 여전히 숨을 쉰다.